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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어쩌면, 삶을 견디게 하는 것들-방종우-

by 행축이네 2024.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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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고른 건 우연이 방문하게 된 강남 교보문고였다. 정말 오랜만에 서점이라는 공간에서 느끼는 고요함과 나만의 세상에 빠져드는 듯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오늘은 에서지 코너에서 발견한 '어쩌면, 삶을 견디게 하는 것들'이라는 방종 후 신부님의 책을 리뷰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천주교인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완독하고 느낀 건 신부님이라는 분들이 일반적인 삶을 살고 있는 우리와 괴리감이 큰 다른 세상에 사는 그런 분들이 아니라는 부분이었다. 이 글의 저자인 방종 후 신부님은 더욱이 공부도 많이 하시고 사제를 교육하는 곳에 계시는 교수님이시기도 한데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친구와 재밌는 얘기를 나누는 그런 시간을 가지는 듯하다. 신부님의 어린 시절과 유학 시절, 그리고 소소한 일상들, 그 안에서의 사유들. 

 프롤로그에 신부님이 얘기하신 평범한 삶 속에 깃든 소소한 사랑, 작은 배려, 다정한 안부가 때로는 놀라운 기쁨과 희망이 된다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낸다는 말씀이 얼마나 뼛속에 깊이 들어오는 말인지 모르겠다. 

 불행이라는 것이 나를 덮쳐서 내 온 일상과 삶 자체를 두려움 속에서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지게 하는 것은 정말 진정으로 사탄이 원하는 모습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신부님의 책에선 매우 큰 위로를 얻게 된다. 비록 영원한 행복은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행복이 도처에 있어서 불행을 막아주고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준다는 얘기.



직장에서 어려움 속에 불행을 느끼고 있는 나에게 신부님의 혼잣말은 큰 위로가 된다.

"괜찮아질 거야. 이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괜찮아질 거야. 행복한 순간이 또 찾아올 거야. 어차피 완전한 불행은 없으니까." 



글 쓰는 시기가 12월이라 그런가? 신부님의 산타 이야기가 너무나 재밌게, 또한 너무 가슴 뭉클하게 뇌리에 남는다. 

산타에게 멋진 장난감을 선물로 받은 다른 친구들과 달리 신부님은 언제나 똑같이 책을 선물로 받으셨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는 심지어 한권의 책이 아닌 수 십권의 전집을 산타 선물로 받기도 하셨단다. 기도를 들어주지도 않는 산타며 관여하려는 어른들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가득한 청소년으로 자라나던 때 문학에 빠져 글쓰기로 나름의 스트레스를 풀던 와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 콩쿠르에서 상을 받게 되면서 진정한 산타의 선물이 이런 기쁨을 선사하기 위함이 아녔을까 하는 대목은 정말 지금 나이의 나에게 고개가 너무나 끄덕거리게 하는 부분이었다. 아이들은 이 대목에서 그래도 원하는 게임기나 장난감이 더 최고라고 얘기하겠지만.



우리 인생도 심연과 같다는 말이 나온다. 깊은 바닷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종종 우리의 영혼을 집어삼키지만 지나면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 곁을 빠르게 혹은 느릿느릿 지나간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몸이 던져진 상태에서 불안함에 지배되지 않으려 후후, 숨을 내쉬며 인생이라는 바다를 유영하고 있지만 바로 그동안에도 아름다운 햇살은 우리를 비추고 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라디오에서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 장군이 전쟁에서 큰 승리를 하고 고국에 들어오면 축하 퍼레이드를 하는 내내 옆에서 메멘토 모리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즉,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전우들의 죽음을 기억하기도 하고, 또한 순간의 기쁨에 도취하여서 언젠가 죽게 된다는 진리를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대단한 고대인들의 지혜라고 생각되었다. 

신부님의 책에서도 죽음이라는 종착지로 이끌고 가는 자연의 순리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두 그 와중에 고통과 슬픔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지금까지 그랬듯 내 곁을 스쳐 갈 수많은 사람과 경험이 나를 숨 쉬게 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신부님께서 북카페에서 우연히 읽으신 '게르트너 부부의 여행'이라는 사진집의 내용소개 부분이었다. 몇번을 반복해서 읽느라 책장이 넘어가질 않았다. 내용은 이렇다. 평소 캐러밴을 타고 여행 다니기를 좋아했던 부부는 발트해 주변의 나라들을 여행하기로 했지만 무렵 부인의 치매 증상이 심해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여행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여행을 떠난 부부의 마지막 여정이 사진집에 실려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책 첫 장에 아내가 말을 잃기 전, 같은 문장을 세 번 반복해 적어놓은 마지막 메모가 있었다. "내 곁에 있어 줘/ 내 곁에 있어 줘/ 내 곁에 있어 줘" 

이 남편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녀 자체였고, 그녀 역시 기억을 잃는다 하더라도 남편을 통해 삶의 의미를 유지해 나갈 것이기에 그들에겐 서로의 눈빛과 포옹 안에서 의미를 찾아 보다 완전해지는 사랑만이 있을 뿐이었다.

 와~ 내가 꿈꾸던 미래인데... 아프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역시 인생은 고통과 슬픔은 언제나 스쳐 가기 마련인 듯하다. 



나 자신도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더 어른이 된 듯하다. 마냥 착한 일을 하면 살면 언제나 행복하고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는 유아적인 사고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을 받았으니까...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엄청난 일들을 겪고 살았어도 어릴 적 뼛속까지 새겨진 착한 일을 하고 살면 고통과 슬픔은 피해 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은 맹목적 신앙에 가깝게 그 사고 관념이 잘 바뀌지 않는다. 



배우자의 불륜, 이혼, 폐업... 등등 말도 못 할 일을 몇 년 안에 다 겪어내며 열심히 산다고 착하게 산다고 살았는데... 나보다 나쁘게 사는 사람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내게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하며 힘들어했는데... 내가 착하게 살아봐야 얼마나 착하게 살았겠나... 그저 우리는 모두 죄인인 것을. 그리고 내가 배우자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고 해도 나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의 타락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거늘 왜 나 스스로 비수를 꽂고 자책하고 있었는지... 



 게르트너 부부처럼 늘그막에는 같이 여행을 다니며 지내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늘 사람 뜻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는 듯하다. 신이 주신 선물은 내가 달라고 하는 장난감, 인형, 게임기가 아닌 더 큰 상이 있음을 기대하고 믿고 살아가야지. 소소한 행복이 내 삶을 스치는 고통과 슬픔을 씻어내리. 어차피 완전한 불행은 없으니까. 행복한 순간이 또 찾아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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